I'm On My Way

진짜 가고 있습니다

I'm On My Way
(진짜) 가고 있습니다 | 출처: 9GAG

야심차게 블로그를 만들어놓고도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지금까지 내가 써왔던 글들은 대부분 리서치 기반의 글들로 나의 생각을 담기보다는 있는 사실을 분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블로그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나의 생각으로 구성되어야 있어야 하고 이를 여과없이 보여주고 싶다는 강박이 강했고, 그 생각 역시 하루, 매분, 매초마다 달라졌기 때문에 퇴고할 때 마다 게시를 망설이게 되었다.

그래도 앞으로는 블로그를 시작한 원래의 목적인 현재의 나의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서라도 꾸준하게 글을 작성하려고 한다. 간단하게 퇴사 이후의 경험들을 먼저 공유하자면 한 컨설팅 프로젝트를 RA로서 경험해봤고 지금은 개발자로 일하고자하여 개발업무를 경험하고 있다.


개발자로 일하고 싶은 이유

개발자로 일하고 싶게 된 이유를 얘기하기 전에 먼저, 나는 항상 사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장점을 강화하거나 단점을 보완하거나. 그렇다면 개발자로 살고 싶어진 것은 나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인가라 하면 그건 아니다. 오히려 장점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내가 가진 장점은 다양한 프레임워크를 통해 문제에 접근하고 이를 기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하지만 실현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부족하다면 이 장점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구체적인 예시로, 샤워 용품을 만드는 사람이 아이디어를 내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고객이 선 없는 무선 샤워기를 원한다는 생각에 가끔은 블루투스 샤워기 같이 실현할 수 없는 아이템이 기획될 수도 있다. 구체적인 실현방식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실현가능성 뿐만 아니라 어떤 부분을 리서치해야할지, 어떤 의사결정사항이 필요한지에 대해 쪼개서 결정할 수 있게 되며 각각의 모든 부분에서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효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된다.

빨리 만들어라 이과놈들아

또, 일을 추상화해서 생각해보면 결국 제품을 만들거나, 팔거나 둘 중 하나로 귀결된다. 지금까지 나는 만드는 것을 선택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류의 삶은 점차적으로 디지털로 옮겨가고 있고, 사람들이 사용하는 제품 역시 계속해서 온라인 공간속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제품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라도, 내가 아니라 이를 직접 개발하는 개발자와 더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서라도, 개발자로의 삶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해주는 옵션이다.

정리하자면 개발자로 일하고 싶은 것은 나의 장점을 더 강화해 내가 하고싶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함이다.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할거냐는 질문에 나는 어떤 일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리고 일의 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파라미터는 단연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다. 과장 조금 보태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나아가서 어떤 사람들이랑 일하느냐에 따라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라이토는 10초동안 엄청난 양의 독백을 할 수 있지만, 장금이는 10초동안 두마디 밖에 하지 못한다 | 출처: 겜블3부 오딧세이

이외에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는 질문에는 나의 컷에 담고 싶은 것들을 압축적으로 담으며 살아갈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나는 시간은 비연속적이라는 바슐라르의 이론을 좋아한다. 바슐라르의 이론을 자의적으로 해석해보면 시간은 만화와 같이 비연속적으로 흐르며 한 컷, 한 컷 시간은 흐르지만 각 컷에 담을 수 있는 것들은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해석이 된다. 나의 시간과 타인의 시간은 같으면서 다르다. 모두에게 컷 수는 정해져있지만 각 컷 마다 담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정할 수 있다. 누구의 한 컷에는 수백개의 생각이 담겨있을 수 있고, 누구의 한 컷은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아직 1000조짜리 회사를 만들고 싶다, 인간의 삶을 혁신하자라는 크고 강력한 목표도 없고, 이를 위해 살아가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살아가면서 인류의 역사에 스크래치 하나라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이를 위해 지금은 준비하는 과정으로 나 스스로 한 컷 한 컷을 압축적으로 담고, 좋은 사람들에게는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준비단계를 갖추려고 한다.


I’m On my Way

과거에는 회사에서 마음과 인지 비용을 많이 소모했다. 그래서 퇴근 이후에 소모할 인지 비용이 없으니 가성비 좋게 도파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유튜브 shorts, 커뮤니티, 인스타그램 스토리등을 수동적으로 보다가 자는 삶이 반복되었다.

지금 나에게 도파민을 주는 것들은 그런것이 아니다. 사용할 수 있는 인지 비용이 늘어나서 가성비 좋은 도파민이 아닌 비용이 더 들더라도 더 좋은 도파민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찾고 있다. 최근에는 등산을 하고 있는데, 등산은 오르는 과정에서도 주위를 살피면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고, 정상에 올랐을 때 강한 도파민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취미라는 생각이 든다.

설악산에서 회원님들과..^^

많은 일들이 있었고 생각 정리조차 어려웠던 순간들이 더 많았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제는 많은 것들이 정리되었고 지금은 ‘I’m on my way’, 가고 있음 핑을 찍었다. 이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최선을 다해서 가보려고 한다.